입안 가득 봄 내음 물씬~
조화롭고 보배롭다, 봄나물
몸의 균형 맞추는 봄나물의 영양
옛사람들은 나물을 ‘연명을 위한 최소한의 먹을거리’로 여겼다. ‘아흔 아홉가지 나물 이름만 외우고 있으면 굶어 죽을 걱정이 없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왔다. 웅녀가 100일동안 동굴 안에서 웅크리고 앉아 먹은 것은 쑥 한자루와 마늘 스무 알이고, 먹을 게 귀했던 시절 눈 속에서 제일 먼저 순이 오르는 것을 뜯어 먹으며 목숨을 부지했기에 울릉도 사람들은 산마늘을 가리켜 명을 이어준다는 ‘명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나물은 산과 들에서 채취한 먹을거리를 뜻하기도 하지만 한식만의 독특한 음식 조리법을 이르기도 한다. 나물은 재료를 날로 무쳐 먹는 생채와 데치거나 삶은 다음 무치거나 볶아 먹는 숙채(익힌 나물)로 나뉜다. 어떤 방식을 택하던, 갖은 양념을 넣어 조물조물 무치는 동안 손맛이 더해지게 마련이다.
봄에 먹는 갖가지 나물은 약식동원의 대표적인 식재료이다. 음식은 맛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 약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선조들은 좋은 음식으로 몸을 챙기려 했다. 몸의 조화가 깨지면 병이 생긴다고 믿었기에 땅의 기운을 듬뿍 받고 돋은 봄나물 음식을 통해 겨울 동안 어긋난 몸의 조화를 찾았던 것이다. 짜고, 맵고, 달고, 시고, 쓴 오미 중에서도 유독 쓰고 매운 맛이 많이 든 봄나물이 몸의 균형을 맞추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장맛에 손맛 실어 살리는 봄나물의 맛
봄이 시작되면 냉이와 달래를 필두로 하여 쑥, 씀바귀 등이 얼굴을 내민다. 볕이 좀 들었다 싶은 곳에는 벌써 냉이가 말 그대로 발에 밟힐 정도로 지천으로 깔린다. 냉이는 된장찌개에 한 두 뿌리만 썰어 넣어도 겨우내 먹었던 된장찌개와는 벌써 그 향이 다르다. 데친 냉이는 날된장을 넣어 무치거나 초고추장을 넣어 무친다. 냉이를 좀 더 색다르게 즐기고 싶다면 맑은 장국에 말아내는 소면 위에 냉이 한 줌 올려볼만하다. 봄 향기가 입안에 가득 맴을 돈다. 알이 굵고 길이가 짧은 달래는 종종 썰어 참기름을 친 양념장에 넣으면 다른 반찬 없이다 밥 한 그릇을 금세 비워내게 한다. 한여름에 실파 얹어 상추쌈을 먹듯, 이른 봄에 달래 한 줄기를 된장 찍어 상추쌈에 얹어도 별미다. 겨우내 잃어버렸던 입맛을 단숨에 되돌릴 수 있다. 어린 해쑥은 된장국에 넣어 먹는데 경상도 지방에서는 날콩가루에 슬슬 버무려 넣고 끓여 고소하면서도 진득한 맛을 살린다. 쑥국을 좀 더 고급스럽게 즐기려면 애탕을 한번 끓여봄직하다. 다진 쇠고기와 살짝 데친 쑥을 섞어 완자로 빚은 다음 맑은 장국에 띄워 넣어 끓여 먹는 국이다. 쑥은 흰 살 생선과도 잘 어울리는데, 경남 지방에서 먹기 시작했다는 도다리쑥국은 이제 전국적으로 소문난 초봄의 별미로 꼽힌다.
방풍나물 역시 초봄에 꼭 맛봐야 할 나물이다. 말 그래돌 풍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나물이다. 소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은 팔도의 토산품과 음식을 소개한 <도문대작>에서 방풍죽을 가장 먼저 소개하고 있다. 방풍 넣어 끓인 흰 죽을 먹는데 “좋은 맛이 입안에 가득하여 사흘이 지나도 가실 줄 모르는 향기로운 음식”이라는 극찬을 보탰다. 양력으로는 3월부터 먹을 수 있는 방풍나물은 살짝 데쳐 초고추장을 찍어 먹어도 맛있고, 날된장에 좋은 참기름을 섞어 살짝 무쳐 먹어도 그 향이 대단하다.
봄의 시작 알리는 봄나물 예찬
봄이 무르익으면 들이 아닌 산에서 나는 산채가 시장에 나오기 시작한다. 모싯대와 어수리잎은 강원도와 충청도 지방에서 먹는데 고소한 맛이 인상적이다. 다른 나물처럼 된장이나 고추장을 넣어 무쳐 먹어도 좋지만 장아찌로 담가 두고 일 년 내내 즐기기도 한다. 산채 천국 울릉도를 찾으면 뭍에서는 구경 못 하는 전호나물은 고소한 맛이 좋지만, 배에 실어 내갈라치면 금세 시들어버려 울릉도 밖에서는 먹을 수 없는 귀한 나물이 되었다.
명이나물만큼이나 유명한 부지깽이는 사실 멋으로는 첫손에 꼽을 만하다. 3월말부터 4월중순까지 첫물을 채취하는 부지깽이는 손으로 모아 잡아 한 뼘 길이가 되었을 때 뜯는다. 부지깽이 생채를 손에 펼쳐 놓고 된장을 얹은 다음 삼겹살 구이를 싸서 먹는 맛이 기가 막히는데 이맘때 울릉도 식당을 찾으면 삼겹살 구이에 상추 대신 부지깽이 한 바구니가 곁들여지기도 한다. 평창이나 정선, 구례, 산청 등도 봄 산채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여행지이다. 두릅과 엄나무 순으로 시작된 나물 천국은 곰취, 오갈피 순, 햇고사리와 부각 재료가 되는 가죽나물로 이어지면서 마무리된다.
서양의 샐러드 종류가 다양하다지만 우리의 나물 먹는 방법에 대면 어림없는 얘기이다. 날 된장 얹은 쌈 맛도 각별하지만 파릇하게 데쳐서 조물조물 무쳐 먹는 그 맛은 1년 기다림이 아깝지 않다.
-삼성웰스토리 월간지 <웰포유>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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