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리낭창 매생이국에 마음까지 따뜻
매생이
이명아(숙명여자대학교 한국음식연구원 객원교수)
매생이는 완도나 강진처럼 섬이거나 바다를 면하고 있는 일부 지역에서만 먹던 전남 특산물이다. 우리나라 남해안에 주로 서식한다고는 하나 김 양식이 활발한 지역에서 먹던 바다풀이니 역시 완도 근방을 주요 산지로 꼽아야 할 것이다. 김이나 미역은 대중적이지만 매생이는 많은 사람이 먹어 왔던 식재료는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양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명과학대사전>을 보면 매생이는 ‘조간대 상부의 바위 위, 또는 김 양식장의 발에 밀생하여 김 생육에 해를 준다’고 나와 있다. 한마디로 골치 아픈 존재이다. 겨울에 김 양식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가장이 무심히 한 줌 가져오면 뜨끈하게 끓여 저녁상에 올렸던 정도였던 것이다.
옛사람들이 매생이를 먹긴 먹었던 모양이다. 조선시대 정약전이 지은 자산어보에 “누에가 만든 비단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하며, 검푸른 빛깔을 띠고 있다”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말이다. 가지런히 모아 어른 한줌만큼 뭉쳐놓은 매생이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하기란 힘들 것이다. 정약전은 또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러운데 맛이 달고 향기롭다”고 전한다. 그러나 겨울 한철, 특정한 지역에서나 먹을 수 있었고 김이나 미역, 다시마처럼 말려서 보관할 수 없었던 식재료이기에 그 조리법이 널리 퍼지진 않았던 모양이다.
언젠가 완도군 노화도를 찾아 음식 솜씨 꽤 좋다는 지인에게 일상적으로 접하는 매생이국 외에 다른 독특한 음식이 없는지 물었던 적이 있다. 그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꽤 단호하게.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그쪽 지역에서는 매생이를 국으로 끓여먹지 않았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제외한 식구들이 먹었던 음식도 아니라고 했다. 매생이로 국을 꿇이거나 무쳐서 반찬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저 볶듯이 물을 조금 붓고 뭉근히 끓여 반주에 곁들이는 안주 정도로 올렸다는 것이다. 그런 얘기는 다른 섬 주민들에게서도 여러 차례 확인할 수 있었다. 겨울이면 파래를 새콤달콤하게 무쳐 먹거나 묵은지 썰어 넣고 무쳐 두었다가 시원한 물김치 비슷하게 먹었던 기억은 많았지만, 의외로 매생이 관련 기억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미운 사위에게는 매생이국을 준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딸에게 잘하지 못하는 사위를 드러내놓고 나무라지는 못하니 입 천장을 데이기 쉬운 매생이국을 끓여줌으로써 소심한 복수를 하는 장모의 심정을 빗댄 말이다. 그런데, 눈치 없는 이 사위, 맛있다고 서너 대접 더 청하여 먹다가는 더한 미움을 받았을 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땔감을 때서 음식을 했기에 국을 많이 끓일수록 연기가 많이 나 “사위 국 세 대접에 장모 눈 먼다”는 속담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때 끓여주었던 역설적 사위사랑 매생이국은 아마도 밥에 곁들이는 국이라기보다는 반주에 곁들이는 안주 비슷하지 않았을까.
매생이의 제철은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이다. 이때는 마침 굴도 제철을 맞이한다. 그러니 굴을 슬쩍 볶아 물을 붓고 뽀얗게 끓여낸 육수에 매생이를 넣어 먹는 매생이굴국이야말로 최고의 음식궁합, 제철궁합이 아닐까. 여기에 가래떡을 썰어 넣으면 매생이떡국이요, 손수 반죽한 국수를 썰어 넣으면 매생이 칼국수가 된다.
대부분의 해조류가 그렇듯, 매생이도 철분이 풍부하게 들어있다. 100g당 43.1mg이나 되는데 이는 우유의 40배 가까운 수치이다. 칼슘함량도 100g당 574mg으로 우유의 5배 정도가 된다. 매생이의 담백한 맛을 즐겨야 하니 고기로 진하게 육수를 우려 붓는 것은 옳지 않다. 멸치국물도 나쁘지는 않지만 깔끔하게 굴과 다시마 정도로 육수를 만들거나 보리새우를 끓여낸 국물을 쓰면 더욱 좋다. 매생이는 오래 끓이면 녹아버리므로 파래처럼 전을 부치는 것은 좋은 조리법이 아니다. 다이어트 중이라 국물을 많이 먹지 않는 식이요법을 하고 있다면 국물을 거의 잡지 않고 살짝 볶듯이 조리해 건더기를 많이 먹는 것도 좋은 방법. 엽록소와 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를 예방하는 좋은 다이어트 음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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